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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한열열사

바이효니 2017. 6. 10. 11:41

이한열열사 우상호의원, 우현, 안내상

 

 



6월 10일,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이한열 열사에 대한 이야기 방송되어 화제입니다.

지난 6월 10일 민주항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1987년 6월 9일, 멈춰버린 시간에 여든을 눈앞에 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서울로 대학을 보낸 아들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날이라고 합니다.


 

고 이한열 열사와 어머니


이날은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기 위한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그의 아들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22살의 어린 학생이 정부 공권력의 과잉진압에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지 27일 만인 7월 5일 끝내 이한열 열사는 죽었습니다.




이한열의사의 벗이였던 우상호 의원은 이날 "지난 30년은 어머니와 저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며 그 이유는 "떨쳐버리려해도 떨쳐버릴수 없는 6월 9일의 기억 때문"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제가 연세대 도서관 민주광장에서 '물러서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안했더라면 '생명다하도록 전두환과 맞서 싸우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한열이가 물러서지 않았을까" 라며 자책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9일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열린 추도식에사건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 의원이 추모사와 함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이야기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이 쓰러질 당시 입고 있던 옷과 신발 등의 유품들을 모아 자그마한 기념관을 마련했고, 당시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만큼은 찾지 못한 상황. 이를 찾는 모습이 방송으로 나왔습니다.



위의 시계가 당시 이한열 열사가 차고 있던 시계입니다.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0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30년 전 6월,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었다"며 6.10민주항쟁 기념사를 했습니다.

 



또 이어 그는 문재인 정부가 6월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며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언급하며 "역사를 바꾼 두 청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사 전문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국민여러분과 함께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서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물이 안된 청년부터 일흔의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고, 영남과 호남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 뜨거웠던 구호가 지금도 귀에서 생생합니다. 30년 전 6월,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었습니다. 빗발치는 최루탄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년학생들. 응원군에서 항쟁의 주역으로 변해간 넥타이부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고, 빵을 나눠주고, 전투경찰의 가슴에 평화의 꽃을 달아주었던 시민들.그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어 그는



우리는 6월 항쟁을 통해 주권자 국민의 힘을 배웠습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실천적으로 경험했습니다. 6월의 시민은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시민은 민주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습니다.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었습니다.



 

 


우리 앞의 과제는 다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며,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지난 최순실게이트를 가리키며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운용하는 제도와 권력기관이 국민의 의사와 의지를 감시하고 왜곡하고 억압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연합뉴스





 

 


이번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고 이한열 열사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 배우 우현과 안내상의 인연이 화제입니다.




위의 사진은 이한열열사의 어머니가 마련한 보존 박물관입니다.

시위 당시 그가 입고 있었떤 티셔츠와, 신발, 벨트 그리고 시계를 영구 보존합니다.



그 앞에서 눈물 흘리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아픕니다.


ⓒ연하뉴스


 

 




우상호 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 속에는 과거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 안내상이 이한열 열사의 태극기와 영정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또 배우 안내상은 비통함에 젖어 오른손에는 손수건을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당시 우상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부의장으로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을 이끌었고,

배우 우현씨은 연세대 신학과 재학생으로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고합니다.

안내상씨 역시 우현의 연세대 신학과 동기라고합니다.




 

 


이한열 어머니는 지난해 광화문에 모인 촛불시민들을 보고 "국민들이 이한열을 잊은 게 아니구나. 민주주의 열망을 잊지 않았구나. 많은 국민들이 정권교체로 이한열을 잊지 않았다고 대답해주는 듯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한열열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열사들.



그들의 넋.




문재인 대통령은 "30년 전 6월, 우리는 국민이 승리하는 역사를 경험했다"며 6.10민주항쟁에 대해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던 저항들이 끝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너무도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역사였다"고 말했습니다.



 

 




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신촌의 연세대학교.






당시 연세춘추사 대학 교내 신문에는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우상호 의원은,

이한열 열사의 소생을 다루기위해 싸웠던 마음으로 백남기 농민 문제를 다루겠다며,

비슷한 방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겠다며

그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였습니다.




 

 


한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였을 이한열열사.

어느날 갑자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을까요.

이후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가슴에선 뜨거운 눈물만이 흐를것입니다.

더이상 이한열 열사와 같이, 부조리한 나라의 관행으로 헛된 죽음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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