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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유시민 항소이유서

바이효니 2017. 6. 9. 23:35

유시민 항소이유서 알쓸신잡




 

 


유시민씨가 출연하는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이 방송되자,

그의 항소이유서가 화제입니다.

지금바로 만나볼게요~!




유시민씨는 알쓸신잡에서 항소이유서에 대해 밝혓는데요.

그는 1984년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 주모자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요

이에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명문장으로 유명합니다.



ⓒ다음인물정보

 

 


그는 전 국회의원이기도하지만, 작가이기도하죠.

그는 달변가로 손꼽히죠.





그는 "1심에서 1년 6월을 받았다. 사실 나는 한 대도 안 때려 봤다. 나는 관계가 없으니까 형사가 만나자고 해서 동네 다방에 만나러 갔다가 잡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진술서도 안 썼는데 주범이라고 자백했다고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네요.




9일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서는 순천과 보성에서 미식과 힐링이 함께 하는 잡학 여행에 유희열,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이 출연했습니다.


 

 


또 유시민씨는 "항소이유서 이후 선배들이 글쓰는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 시키더라. 그때부터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누워 첫문장부터 마지막까지 머리 속으로 다 생각해야 한다며 한자 연습도 오자 안 나게 미리 연습했다"고 일필휘지로 작성한 사실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알쓸신잡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유시민씨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작성했던 항소 이유서가 언급됐습니다.

이에 그는 "항소이유서를 순수하게 쓴 시간은 열 네 시간이다. 퇴고는 없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어 "변호사가 큰 누이를 불러 혼자 보기 아깝다고 했다"며 항소이유서가 퍼져나간 계기를 밝혔습니다. 

그는 당시 일로 인해 '내가 글을 쓰고 먹고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 결국 작가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이야기하네요.



그의 어릴적 가정환경을 보면,

그의 아버지는 역사 교사였으며, 어머니는 요즘말로 슈퍼마켓 같은 구멍가게를 했다고 합니다.

즉 소시민 집안이였죠.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자식들에게 각종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게 하였고 식사 시간에는 자주 역사 이야기를 들려 주거나 한 주제를 두고 자식들과 진지하게 토론했다고 합니다.

이때의 습관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걸까요?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 되고,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 1980년대였기에 민주화 운동은 더욱 가속화 되고 5월 15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합니다.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계엄 해제 및 신군부 퇴진을 요구했는데 

밤 8시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서울지역 1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은 시위를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회의를 하고 결국 해산하게 되는데, 이것을 서울역 회군이라고 한다네요.

이 때 그는 회군을 반대했던 '매파'의 일원이었다고해요. 





위의 사진은 유시민 전 의원의 딸 유수진씨.


그는 자신을 뼛속까지 친노라며.

자신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유시민 전 의원의 군대시절



 

 


유시민 전 의원의 가족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눈물.


 

 


그는 썰전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언변으로 보수에 대한 비판과

고정관념에 대해 꼬집었는데요




 

 


과거 개성 공단의 일화를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새로운 정부, 문재인 정부가 총리를 하라고 한다면

하겠다, 대신 퇴근후 썰전을 하는 조건에서 승낙하겠다는 우스겟소리도했죠.



 

 


그는 과거1983년 5월 군에서 제대한 후 서울대에 복학했는데요.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 위에 서술된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연합뉴스





이후 선배가 경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졸업 후에는 그와 친한 방송국 PD의 배려로 드라마 각본가로도 활동했는데, 앞서 서술했던 학생 운동 때문에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 위장을 하며 '유지수'라는 가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가 각본을 썼던 1988년에 방영한 MBC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에서도 '극본 유지수'라고 소개되었다. 썰전에서 유지수 시절을 흑역사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그와 그의 아내.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두달 동안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후

이른바 녹화 사업에 강제 징집되어 화천군에서 복무한 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습니다. 



녹화사업은 당시 민주화 운동가와 대학생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최전방으로 입대시키는 제도였는데요. 

화천 7사단에 입대해서도 군사 정권에 의해 관심사병으로 지정되어 몇 번이고 전출과 전입을 반복하고 사상 검증이랍시고 끌고 가서 고초를 겪었다고 하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군대 시절 미담 중에는 사격과 축구를 잘했고, 부친의 수술을 앞둔 후임을 위해 자신의 포상 휴가를 반납하고 그 후임의 청원 휴가를 보내줬다고합니다. 본인 역시 이후 항소 이유서에서 밝힌 군시절의 자신의 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






 

 


유승민 후보자의 딸이 대선 유세에 참여하면서 유시민씨의 딸 유수진씨도 화제가 되었었죠.



ⓒ나무위키


그의 과거 행적.



 

 


위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의 모습이라고합니다.

ㅠㅠ



 

 

그의 항소이유서는 굉장히 긴데요.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 시작해서,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 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 시 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로 마무리됩니다.


 

 


그의 언변과, 작술실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저도 포스팅을 위해 항소이유서를 읽어보았는데

반박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인 유시민씨 앞으로도 방송활동 많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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