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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윤이상 김정숙

바이효니 2017. 7. 6. 12:58

윤이상 김정숙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독일에 방문해,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고(故) 윤이상 선생의 묘지에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습니다.

김정숙 여사, 통영서 공수해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동백나무는 이날 베를린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1호기를 타고 한국 통영에서 공수됐습니다.

 김 여사는 고향땅을 못 밟았던 윤 선생을 언급하며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위로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날 김정숙 여사는 묘지에 동백나무를 심으며 “식물 통관이 굉장히 힘든데 까다로운 절차를 마치고 묘소에 잘 심게 됐다. 아마 윤이상 선생과 뭔가 잘 통했나보다”고 말했네요.


ⓒ다음인물정보


윤이상 작곡가는 17년생으로 95년도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백동림 사건에 연류되면서 종북 작곡가라고 밝혀지며 

이후 30년동안 우리나라에 출입국 금지령이 내려졌었죠.


 

 


 

 

김정숙여사는 이어 “생전에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얘기에 많이 울었다”며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묘지를 둘러보던 중 김 여사를 알아본 한국 여행객들이 “오늘 오시는 줄 모르고 방문했다”며 인사를 건넸고 이에 김 여사도 웃으며 화답했습니다.

묘비 앞 동백나무에는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글씨가 새겨졌습니다.

김 여사가 헌화한 원형 모양의 꽃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적혀 있었네요.


 

 


 

 

현재 윤이상 재단은 독일에 있는 윤이상 생가를 매입했으나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기념관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는 전 박근혜 정권의 압박때문이 아니냐는 말도 있네요.

 이날 참배에 동행한 윤 선생 제자들은 이날 김 여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요청했고, 김 여사는 노력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성악을 전공한 김 여사는 학창 시절 윤 선생으로부터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날 기념식수도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윤 선생을 기리고자 윤 선생의 고향에서 동백나무를 택했습니다.



윤이상은 한국 출신 작곡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계속 시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독 동포 오길남에 대한 탈북권유 논란, 북한 정권의 윤이상 추대 등까지 겹쳐지며 그의 음악은 한국 땅에서 연주되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에 실제 ‘윤이상평화재단’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전 세계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현대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유럽 현대음악의 첨단 어법으로 한국적 음향을 표현하는 데 도전했으며 작품 속에 동양의 정중동(靜中動·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의 원리를 녹여내기도 했죠.



그는 늘 고향 통영의 바다와 흙이 음악 세계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지만, 동백림사건 이후 끝내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김 여사도 이 때문에 참배에 앞서 통영에서 공수한 동백나무를 묘비 바로 앞에 심었네요.


ⓒ연합뉴스


그의 생전 친필 악보는 한국에 들여오기로 했는데요. 몇점은 유가족들의 기증으로,

몇점은 일정 금액을 제공하고 공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편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는 그의 음악적 업적을 바탕으로 마케팅하기도 했습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한 성악도 출신이다. 그는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살아생전 베를린 자택해서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윤이상 작곡가와 아내 이수자 여사님.


 

 


한편,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음악계 이곳저곳에서도 그의 음악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코리안심포니는 오는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죽음에 관한 두 개의 교향시’라는 주제 아래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 등을 연주한다고하네요.


 

 


서울시향은 다음 달 15일 광복절 기념음악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윤이상의 ‘예악’을 선보이고, 

첼리스트 고봉인은 오는 9월 14일 금호아트홀에서 윤이상 특별 무대를 엽니다.



 

 


두분의 결혼식 사진,

박정희 정권의 동백림간첩단 사건 때문에 독일 베를린에서 생을 마쳐야했던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



 

 

그는 통영의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고하네요.

1943년 항일지하활동에 참가한 이유로 감금을 당하기도 했고 해방 후 1952년까지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이후 1953년에 서울로 이주하여 경희대·숙명여대·덕성여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 윤이상 작곡가, 아내 이수자여사.


이후 그는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7년까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했고, 다시 독일로 가 베를린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해 1959년 졸업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초대로 북한에 방문하기도했고,

이후 그의 넋을 기리기위해 북한에서는 공연이 있기도 했다네요.

이때문에 더욱 그가 종북 작곡가라고 오해를 받고 있는 듯 합니다.


 

 



ⓒ뉴스이즈


윤 선생은 졸업과 동시에 네델란드의 빌토벤과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과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독일에 체류하게 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활동을 하다가 1964년 독일 포드기금회의 요청으로 베를린에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에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 1966년에 독일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에서 대편성 관현악곡 '예악'을 발표하여 국제적인 작곡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65년에 '현악4중주 1번'과 '피아노 3중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네요.


 

 


1967년에는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돼 2년간 복역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콘트라베이스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가 '간첩'으로 몰렸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독일 정부와 세계 음악계의 요구로 2년 만에 석방돼 1969년 다시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원조 '블랙리스트'였던 셈이네요.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쳤고, 1971년에는 독일 국적을 취득하였습니다.

 1972년에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네요.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85년에 튀빙겐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1970년에 킬 문화상과 1987년에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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