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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동 임청각 이상룡

바이효니 2017. 8. 15. 14:45

안동 임청각 이상룡



안동 임청각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안동 임청각을 언급했는데요.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과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인데요.

파락호 김용환 선생과 마찬가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죠.

근대의 유한양행의 최초 설립자인 기업가 유일한 선생도 마찬가지의 애국지사이죠.


 

 


 일본 제국이 지난 1942년 중앙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은 99칸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궁이 지을 수 있는 크기를 제외하고 가장 큰 크기인 99칸으로 지어진 이 저택은 보물로 지정되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중 철도 건설로 일부를 무참히 파괴해 지금은 50여칸만 남아 있죠.


 

 


문재인 대통령이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거듭 극찬하면서 임청각(보물 182호)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죠.


 

 


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라고 합니다.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고 99칸을 배치한 살림집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대청에 걸려있는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졌죠.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임청각이지만 정작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죠.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고 합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네요.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해봤지만, 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인데요.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다고 하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국가를 위해 바친것이죠.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죠.


 

 


 일본 제국이 지난 1942년 중앙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99칸) 일부를 무참히 파괴해 지금은 50여칸만 남아 있습니다.



친일파 자손들의 재산은 아직까지도 회수되지 않고 있는 실정,

그에 반해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죠.

때문에 실제로 어린시절 독립운동으로 부모를 잃은 독립운동가의 자재들이 고아원을 전전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죠.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거듭 극찬하면서 임청각(보물 182호)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라고 합니다.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고 99칸을 배치한 살림집으로 지었졌는데요.

대청에 걸려있는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졌죠.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임청각이지만 정작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인데요.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허은 여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라에)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광복절,

나라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분들의 넋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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